[단상] 나의 스무살 생일을 맞이하며

제가 오늘 스무살의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미성년자의 타이틀을 때고, 성인으로써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되는 나이이죠. 이제부터 제 모든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침에 성인이 된 기념으로 롯데카드에서 신용카드 한장을 발급받았습니다. 성인이 된 아침에 신용카드부터 만든다니요. 제가 생각해도 참 웃기면서 신기합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게 실감됩니다.

오늘 생일이었지만, 동시에 현재 우한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기인지라 길거리에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더라고요. 저도 마스크에 안경까지 쓰고, 길거리에 나와서 약국에서 알콜 소독제를 사재기하였습니다. 참 사람 심리라는게 재미있는게, 평소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다가도 불안 심리가 증폭되면 비이성적일 만큼 예민해지게 되죠. 저도 최근에 질병이나 청결에 관해서 평소보다 더욱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평소에 가던 병원도 들렸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대화도 나누고요.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있는 그대로 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그게 이성적으로는 합리적인 일인데, 제 감정은 아직 혼란스러운가 봅니다. 일단 제 자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어요. 제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저에 대해 알게될 수록 떠나갈 사람은 떠나가겠지만, 동시에 소중한 사람들은 더욱 강한 애착을 가지며 주변에서 함께할 수 있을텐데요. 그리고 제가 지나쳐온 것들이 사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닐텐데 말이죠.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지만, 그럴 수록 더욱 단단하게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연애를 해보라는 조언도 듣게 되었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연애를 하게되면 친구 관계와는 달리 서로의 본모습이자 이면까지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죠. 이제까지는 제 자신을 인정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절망감을 가지면서 일부러 연애 관계를 기피한 때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다른 가치관을 추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를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게 제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런 사람과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물론 저도 열린 마음으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본모습 그대로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사실 적어두고 보니 웃기지만, 그렇습니다. 그만큼 제가 현재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증빙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젯밤 부질없는 부정적인 생각들도 연달아 떠올랐었습니다. 내일 생일인데, 과연 생일이 기념할 일인가. 내가 이 세상에 빛을 발한 것이 과연 축하해야할 일인걸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쇼펜하우어는 ‘모든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러면 삶을 지속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참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른 채로 잠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제 생일을 축하해주시더라고요. 그 분들에게 감사했었습니다. 먼저 생일 전날 저녁에 저녁에 윤화 누나가 제게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줬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풀리면서 살짝 울컥한 감정이 들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래도 축하받는다는 일은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선물들과 함께 축하의 메세지를 남겨주었을 때 행복했었습니다. 아, 내가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애정을 받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저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줬습니다.

처음으로 스무살을 맞이하면서 드는 생각이 많아지네요. 먼 미래의 임세준이 지금의 제 글을 언젠간 한번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임세준이 이 글을 보며, 그때의 많은 고민들과 함께 어쩌면 고통스러웠을 시간들을 기억해주고 감사해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뜻은 지금의 제 시간들이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이 되어준다는 의미겠지요. 미래의 임세준이 제발 성공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하나 믿고 지금을 살아갑니다. 제 스무살은 제가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성장하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상] 낙관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면서,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가지가 바로 ‘존재론적 공포감(Existential Crisis)’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단어가 어렵지만, 존재론적 공포감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 나는 죽으면 끝 아닌가? 그럼 대체 왜 사는거지?’ 정도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생각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가지게 되는 의문인데,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자아내게 되죠. 그러던 중, 이러한 고민에 대한 독일 출신의 애니메이터가 과학적 상식과 통찰에 대해서 다루는 유튜브 채널, Kurzgesagt에 좋은 영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가 위에 올려둔 영상을 먼저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영상은 제가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존재론적 공포감을 ‘낙관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의 가치체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인생의 의미는 허무한 만큼,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줄 일을 찾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찾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을 중시하는 제게 낙관적 허무주의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철학적인 견해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영상의 나레이션을 하나씩 분석해가보면서 제 생각을 더해보고자 합니다.

존재론적 공포감

수십만년 전, 우리는 자아를 가지게 되었고 지구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와주는 태양과 먹고 마실 수 있는 존재들, 무언가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도 있었고,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류는 지구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운이 좋게도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죠. 인류가 지적 능력을 갖춘 것이 대여과기(The Great Filter)를 지나쳤다는 증거로 이야기할 만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인류는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토테미즘을 신봉했었고, 그 이후에도 종교를 창시하면서 신이라는 우리보다 큰 존재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러한 존재만 바라보고 살면서 지구의 자원들을 향유하면 되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주변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됩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우리를 비춰주는 태양은 우릴 도와주려고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고,
우주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우주의 극히 작고작은 조각이면서
또 우리가 살고있는 시간조차 수억년 전으로 남게될 역사의 일부라는것을 알게됐습니다.

저도 그렇듯, 지적인 성장을 지속하게 되면 자신의 주변환경에 대한 인지를 시작하게 됩니다. 내 주변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고, 통찰력을 얻게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실들은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인류도 자신들이 향유하고 있던 자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자신들은 그저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라는걸 어느순간 깨닫게 되었겠죠. 그리고 이렇게 머무는 시간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말 의미조차 없는 짧은 찰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생물학적 작용이 정지되고, 더이상 남아있지 않을때까지 분해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보거나 측정할수없는 어떤것이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그 부분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죽음과 우주에 대한 공포를 모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존재하기전에 지나간 수십억년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라지고 난 후인 수천 조년도 순식간에 지나갈것입니다.

눈을 감고 1을 세보세요.
그게 영원의 길이만큼의 느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종래에는 우주 자체도 사라질 것이고 그 어떤 것도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몇몇 종교에서는 영적인 부활과 같은 개념들을 떠들지만, 생물학적인 작용이 정지하면 인간의 생명이 끝난다는 점 이외에는 증명된 바가 없죠. 이러한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지만, 지구에 그저 들렸다 가는 존재로써 우리의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재빠르게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엔 우주도 수십억년 이후에는 열죽음을 맞이할테니, 우리에 대한 기억도 모두 사라지게 되겠죠.

낙관적 허무주의

우리는 지식을 쌓아갈때마다 존재론적 공포감을 유발합니다.
이런 공포는 낙관적 허무주의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종말의 우울함을 덜어주진 못합니다.

우리의 지적 수준이 성장할 때마다 존재론적 공포감은 커져만 갑니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록, 인간의 생물학적 작용의 종말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언젠가 우주가 열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죠. 결국 우리가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거죠?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이 말은 무섭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우주가 열죽음으로 끝난다면 삶에서 받는 고통과 치욕은 모두 잊혀질것 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모든실수와 나쁜일 또한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치만, 그 동시에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제가 지나가는 소리로 자주하는 말 중에 하나인데요. 인간에게 사는건 고통스럽고 죽는건 행복합니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끝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시간동안 자유롭게 하고싶은 것들을 할 수 있죠.

만약 우리의 삶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전부라면,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주 자체에 원칙이 없다면, 가장 의미있는 원칙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들입니다.
만약 우주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우리가 우주의 목적을 정합니다.

인간은 분명히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의 세계를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느낍니다. 음식과 책, 일출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꽤 놀랍습니다.

사건은 중립적이고 해석은 자율적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결정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최대한 느끼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겠지요. 물론, 인생을 살면서 좋은 경험만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나쁜 경험들에 대해서 우울감을 느끼기 보다는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겠죠. 누군가는 이것을 자기합리화라고 하지만, 저는 어느정도의 자기합리화는 자기 자신을 보듬고 자신의 자아와의 타협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 우리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깐요.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우주의 법칙들이 그러한지,
어떻게 생명이 탄생했는지, 생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의식이 무엇인지 혹은 우리가 우주에 홀로 있는 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가지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가봐야 할 엄청난 양의 별들과, 치료해야 할 수많은 질병들이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누려야 할 행복한 감정들,
그리고 끝내야 할 컴퓨터 게임들이 남아 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우리의 지식에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아직 우리는 연구해야할 과학적 지식들이 남아있고, 우리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두려움을 정복하기에는 한참 많은 과제들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에게 성취감을 줄만한 대상들이 많이 남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화성을 정복할 수도 있고,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으며, 하다못해 아직 즐기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아직 대학에 와서 연애도 못해봤는걸요. 아직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마무리 하자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이미 사용하셨을 겁니다.
인생을 단 한번만 살 수 있다면, 무미건조하거나 우울하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더불어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만약 당신이 은하계의 인간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당신을 기분좋게 해줄 일들을 해보세요.

이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바로 당신이 결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을만한 일들을 하면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게 운좋게 주어진 지적인 능력으로 과학적인 한계를 넘어 사람들이 기술적 우위를 달성할 수 있게 돕고싶습니다. 제가 엘론 머스크과 같은 혁신적인 과학자가 될 수는 없어도, 피터 틸과 같이 과학적 혁신을 지원하는 사업가는 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 자신과 환경에 의한 끝없는 부침을 느끼겠지만 무미건조함이나 우울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에는 종말점이 있고, 그 때까지 우울하게 지내기에는 할 일은 너무나도 많으니깐요. 제 기분을 좋게 할만한 일들을 할 생각입니다. 정말 제게 제 인생이 어떤 의미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