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셰임(2013, Shame)

We’re not bad people.
We just come from a bad place.
우리가 나쁜 사람들인 건 아니잖아.
우린 그냥, 그저 잘못된 곳에 있는 것 뿐이야. 

– 씨씨 설리반(Sissy Sullivan)

싸구려 위스키인 조니워커 레드라벨 한잔과 함께 보기 시작했지만, 이내 영화의 무게에 압도되어 진지하게 보게된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많은 말들을 할 수 없지만 나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준 영화기도 합니다.

과연 나쁜 사람의 기준은 어디인 것인가?
잘못된 길을 향해가는 것을 알면서 다시 반복하게 하는 중독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차마 말할 수 없지만 내면에 가지고 사는 결함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사람들인가?

영화 속에 평범한 직장인이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중독성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도, 끝까지 이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레퀴엠 포 어 드림(Requiem for a Dream)이 격동적인 촬영 기법으로 중독의 폐혜를 그려냈다면, 이 영화는 서서히 무너지는 일상의 모습을 차분하게 담아내는 점이 특징이죠. 이 영화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수는 없지만,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해봅니다. 제 자신도 되돌아 보게 만든 영화였네요.

[문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映画 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青色だ)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정말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동네 CGV에서 독특한 독립영화를 틀어주길래, 한번 호기심에 보게 됐네요. 새로운 분위기의 영화가 보고싶다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감에 관한 영화입니다. 도쿄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도시가 되어, 도시의 젊은 층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어둡고 우울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암울한 도쿄에서 살아가는 두 남녀의 얘기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신지는 한쪽 눈이 안보이는 청년으로, 공사판의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합니다. 미카는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걸스바에서 일하는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사회의 이면을 마주하면서 절망하지만, 둘을 만나고 서로에게 기대면서 희망을 얻습니다.

영화에서의 영상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쿄의 야경과 소음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그 아래에 내면 깊이 숨어있는 사람들의 ‘짙은 블루’ 색의 불안함과 우울함을 도시가 잡아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이 안보이는 신지가 바라보는 세상은 스크린 반쪽이 가려진 것으로 표현됩니다. 파란 하늘도 반쪽, 공사판도 반쪽, 모든 세상이 반쪽밖에 안보이는 답답함을 보여줍니다. 영상에서의 표현으로 도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일본의 사회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신지가 일하는 공사판은 2020 도쿄 올림픽 건설현장이고, 동료는 과로사하며, 옆집 노인은 고독사하고 맙니다. 미카도 마찬가지라, 간호사로써 매일 죽음을 접하고, 걸스바에서 일본의 밤문화에 톱니바퀴가 되어 일하면서, 방사능이나 지진과 같은 재해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모두 일본의 젊은 층이라면 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들도 많습니다. 영화 내내 절망적인 상황을 여러개 이어서 스토리를 이어나가려 하다보니, 나중에는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절망적인 삶을 산다는걸 1시간동안 소개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영화답게, 마지막에는 ‘그래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나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안끝나면 검열당하기라도 하는걸까요. 마치 ‘도쿄 생활이 너무 힘들어…’가 계속 이어져오다가, 신지와 미카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반전되어 ‘그래도 살아야지!’로 전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일본 사회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네요. 동네 CGV에서 독립영화들을 많이 틀어주는 것 같던데, 다음에도 일본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으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문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8)


이 영화는 빨간안경 이동진이 영화리뷰를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덩케르크>라는 영화에 관심을 가져서 영화리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근데, 덩케르크 탈출 작전 이전에 처칠을 개인상을 다룬 작품이 있다고 소개하길래 접하게 되었네요.

나치의 폴란드 침공부터 덩케르트 탈출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처칠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영국에 소속당 지지도 못받는 총리, 파탄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사, 그리고 가족에게 무관심한 가장으로서 처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위인으로 추앙받는 처칠도 한 사람이라는걸 보여줍니다. 특히 칼레에 주둔한 군대에 희생을 강요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절멸할 것을 알면서도 군사들을 적진으로 몰아넣는 장면,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에 마지막을 맞이하는 군인들, 그것에 약간은 고통스러워하는 처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역사의 굴레에서 사람은 나약하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곳곳에 이질적인 영화적 설정도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전쟁을 외치는 시민들이라던지, 우상화가 너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적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우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영화리뷰는 여기에 잘 소개되어있습니다.

사실, 나는 영국이  나치즘 못지 않은 제국주의 행각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분명 잘못된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면죄부도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쥐어진 것입니다. 국가가 절멸위기에 있을때는 국익을 위해서 움직일 사람이 필요합니다.  당시 내외부에서 몰락이 다가오던 영국에게 처칠은 차악에 선택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우상화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한 시대와 사람의 역사에 대해서는 꽤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아이 인 더 스카이(2016, Eye in the Sky)

 


집 안에서는 자살 테러 준비를 끝마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알샤바브 테러리스트가 있다. 집 앞 도로변에서는 꼬마 아이가 빵을 팔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무차별 공격으로 최소 80명 이상의 사상자가 예상된다. 때마침, 리퍼(MQ-1, 미군 정찰 및 공격용 드론)가 하늘에서 테러리스트 폭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60% 확률로 빵파는 꼬마아이는 폭격으로 죽는다. 과연 폭격을 감행해야 하는가?

102분의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다. 정말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다. 누군가는 아무 거리낌 없이 폭격을 승인하겠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 중 미국인 2명과 영국인 1명이 포함되어 있다면요?
주인공인 영국군 대령 입장에서 보았을 때, 타국 국민을 함부로 사살하는건 외교적 분쟁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영화 상에서는 백악관 보좌관과 핑퐁외교를 몸소 실천하시던 국무장관이 ‘미국의 적은 미국 시민권자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줘 외교분쟁은 해소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친서방 국가가 아닌 제3국가 출신이었다면, 외교분쟁은 피해가기 힘들었겠죠.

예상 피해 추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기 이전에 예상 피해 추산이 우선시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민간인 사상자 수에 대한 예상 피해 추산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영화에서는 영국군 대령이 담당 중사에게 압력을 넣어 기록을 조작합니다만, 현실에서는 감찰에서 걸리기 딱 좋은 행동입니다.

만약 폭격 과정에서 꼬마가 같이 죽는다면?
‘서방국가의 드론이 우리 꼬마아이의 생명을 앗아갔다’라는 선전물이 지역에 퍼지게 되겠죠. 테러리스트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프로파간다 도구를 지원해주는 꼴이 됩니다. 그에 반해 ‘잠재적인 피해자’를 막는 것은 서방국 측 프로파간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사람들은 가시적이고 자극적인 것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죠. 차라리 프로파간다 승리를 위해선 테러리스트 공격의 피해가 극대화되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꼬마의 아버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미친놈’들이라며 비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서방국의 폭격 이후 죽어가던 딸에게 도움을 주었던건 이슬람 극단주의 알샤바브였습니다. 그들은 병원으로 꼬마를 이송됐지만, 결국 딸은 죽고맙니다. 꼬마의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최소한 서방국은 딸을 죽인 원수가 되겠죠. 그렇게 알샤바브에 가담하는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서방국 측은 물리적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프로파간다 전쟁에서는 참패한 것이죠. 무엇보다 중요했던 질문은 당위성이라는 것을 다시 환기시켜준 영화였습니다. 하늘 위에 떠다니는 드론과 상황실 내부의 결정을 두고 흐르는 긴장감으로 집중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