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성장통을 겪는다는 것

기분이 그럭저럭 우울할 때 혼자서 적어보는 단상에 관한 글이다.
지난 나의 시간들은 ‘성장통’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좋은 집안의 부모님에게 수준높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그 과정 속에 놓여있던 나는 우울했다.

항상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로 가득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뒤덮여 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다양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합쳐져 매일매일 아프게 만들었다. 최근에 그게 더 심해져 사람을 미치게 뿐이다.

다행히, 성장과정에서 사회생활에 천천히 적응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외적 이미지를 꾸며내는 방법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스마트해보이고, 친절하고, 차분하고, 유머가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가려 노력했다. 내가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변에 사람이 남아있는걸 보니 최소한 사람답게는 행동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만큼, 내 내면에는 죄책감이 계속 남아있다. 내 머릿속 수많은 부정적인 키워드들이 컴퓨터 내 캐시 데이터(Cache data)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내 감정에 혼란을 준다. 물론 한번도 범죄나 피해를 야기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면 사람들이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고 내가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인성이나 교양 측면에서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모종의 이유에서 나의 마음 한켠이 내 자신의 이면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어제 누군가 나에게 연애를 해보는걸 추천해주더라. 지금 외모나 능력을 보니 연애를 못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그런 말씀을 해주신 분께 내 현 상태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나에게 한번 나의 이면을 그대로 이해해줄만한 사람을 찾고, 나도 그사람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뭔가 와닿는 말이긴 했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들었다.

그래도 이러한 아픈 구석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누가 만들어냈을지 모를, 사회적 모형이자 프로메테우스의 침대를 경험하면서 한계를 깨부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랐고, 그렇게 기술지상주의자적 사고방식이 자리잡았다. 무슨 나이를 스무살이나 먹고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나 웃기겠지만, 기술적 우위에 도달해서 현실에서 화성을 테라포밍(Terraforming)하고 심층적인 VR을 만들어서 평생 그 안에서 살아보는 망상도 해본다. 아직 만들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 기술적 우위점이 온다는 희망조차 없으면 이미 죽으러 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만들고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순진한 발상에서 엔지니어의 길을 걷는 것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직 나의 미숙한 감정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은 매우 고통스럽다. 특히 하나의 사건을 성숙한 이성적인 사고로 해석하는 것과 미숙한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에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래도 이 고통의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미래에 나를 더욱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항상 말하듯, 나는 미래의 임세준이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 순간을 버텨낸 것에 대해 감사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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