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셰임(2013, Shame)

We’re not bad people.
We just come from a bad place.
우리가 나쁜 사람들인 건 아니잖아.
우린 그냥, 그저 잘못된 곳에 있는 것 뿐이야. 

– 씨씨 설리반(Sissy Sullivan)

싸구려 위스키인 조니워커 레드라벨 한잔과 함께 보기 시작했지만, 이내 영화의 무게에 압도되어 진지하게 보게된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많은 말들을 할 수 없지만 나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준 영화기도 합니다.

과연 나쁜 사람의 기준은 어디인 것인가?
잘못된 길을 향해가는 것을 알면서 다시 반복하게 하는 중독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차마 말할 수 없지만 내면에 가지고 사는 결함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사람들인가?

영화 속에 평범한 직장인이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중독성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도, 끝까지 이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레퀴엠 포 어 드림(Requiem for a Dream)이 격동적인 촬영 기법으로 중독의 폐혜를 그려냈다면, 이 영화는 서서히 무너지는 일상의 모습을 차분하게 담아내는 점이 특징이죠. 이 영화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수는 없지만,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해봅니다. 제 자신도 되돌아 보게 만든 영화였네요.

[문화] 비홀더 2(2018, Beholder 2)

저는 디지털 경제, 개인정보보호 정책, 사이버 안보 등에 연구분야로 설정해두고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치와 시사에도 관심을 가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술독재 또는 감시사회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현황을 팔로우 업하고 있죠. 일례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진행되었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인 Sidewalk Toronto라던지 중국의 사회 신용 점수 시스템이자 감시사회화 프로젝트인 Zhima System(芝麻信用) 같은 국가의 기술 도입에 따른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조지 오웰의 1984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스팀에서 문득 1984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임이 하나 나왔다는 소식에 급하게 결제했습니다. 기술독재 사회를 그려낸 게임이라고 하니, Paper Please와 Legal Dungeon에 이어 국가 권력의 부당함을 꼬집은 스토리가 기대되어 바로 손이 갔습니다.

Beholder 2는 기술독재 국가의 고위직 관료였던 아버지의 의문사와 그 아들의 공무원 낙하산 채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고화된 기술독재 국가 속에서 동료들을 제치고 승진을 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가끔은 상사의 부정한 요청도 들어주며 아부하고 동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협력하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정치질을 통해서 상사와 경쟁자를 제거해서 승진해야 하는 잔인한 게임이죠. 여기서 ‘제거’는 정직 또는 해고가 아니라 정말로 정치질로 인해 밀고 당하여 국가에 의해 ‘제거’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기술독재 국가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이상한 민원들을 제기하고 지도자의 지침에 따르고자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죠. 그 와중에 소시민들은 자기 나름대로 억압된 사회 속에서도 일탈 아닌 일탈을 하는 장면들도 볼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1984의 사회를 잘 그려낸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스토리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인 만큼 얘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 게임을 하며 관료체계 속에서 경쟁자를 제치기 위해서 온갖 부당한 행동을 하며 경쟁자를 제치는 제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작 게임에서도 이러는데, 과연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더 흔들렸을까요. 당장 부당한 행동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협조할 수 밖에 없겠죠. 기술이 사회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조종하기 위해 사용될 때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게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더욱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록 게임에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도 한정적이었고, 게임 플레이 자체가 긴장감을 주지 않은데다, 스토리도 무언가 허접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법도 정형적이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한다면서 퍼즐 게임을 하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도 조금 피곤했습니다. 특히 스포일러라 말하지는 못하지만, 마지막 스토리는 조금 허무했습니다. 조금 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다면 좋았겠네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게임의 디스토피아적인 소재와 분위기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만약에 기술독재와 관료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하고선 공무원은 안하기로 결심했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2019, Alita : Battle Angel)

알리타-배틀 엔젤
오늘 CGV에서 다시 영화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사이버 펑크 SF 만화인 <총몽(銃)>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 <알리타 : 배틀 엔젤>입니다. 사실 저는 Z세대이다 보니, 일상에서 일본 만화를 자주 접하지는 않은지라 내용은 모르고 영화부터 접하게 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별 생각없이 봤는데, 보고나서 재미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알리타 : 배틀 엔젤>은 300년 전 대추락 이후 생존한 하늘도시인 ‘자렘’과 거기서 남은 쓰레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고철도시’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알리타는 고철도시에서 폐기된 사이보그 상태로 잠들어 있다 건져져서,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차츰 알아가게 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사이보그의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하고, 자렘을 향한 고철도시의 인간들의 부조리함도 비추면서 영화가 흘러갑니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알리타처럼 무엇이 인간이고 사이보그인지 경계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인간과 사이보그를 나누는 기준이 ‘신체가 로봇으로 대체된 정도’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어느정도 신체를 고철덩이로 개조를 해야 사이보그라고 불리는걸까요? 그건 다들 생각하기 나름이고, 특별히 수치화하기 힘든 영역이겠지요. 하지만, 그전에 인간에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사이보그라 부르기 힘든 경계선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영화에서 알리타가 자신이 사랑과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면서 인간의 일부를 느끼는 것 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영화에서 알리타를 표현한 그래픽의 정교함도 놀라웠습니다. 알리타는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인데도 현실세계의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분명 알리타의 눈은 비정상적으로 큰데다 신체 움직임도 비정상적이었는데 말이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극복했는가’에 대해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대체 이런 렌더링은 누가 어떻게 하는건지, VFX 기술을 뒷받침하는 개발자들과 알고리즘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Nvidia나 AMD에 찾아가야 볼 수 있는걸까요. 지금도 궁금합니다.

처음 <알리타 : 배틀 엔젤>을 접했을 때는 그저그런 사이버 펑크 SF물일 줄 알고 안볼려 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개강 전에 할 짓이 없어서 LG U+에서 한달에 한번 던져주는 무료 영화 티켓으로 끊어본 영화입니다. 그만큼 포스터도 유치해보이고 내용도 알만할 것 같아서, 별 기대를 안했다는 얘기겠지요. 근데 예상하고는 다르게, 그래픽도 뛰어나고 철학적인 내용도 담겨있는걸 보고는 만화 원작을 찾아보게 만드네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역작이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캡틴 마블>에 밀려서 더 이상 영화관 상영을 안할 것 같고, 나중에 VOD로 발매되거나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봐도 좋을 영화입니다.

[문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 映画 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青色だ)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정말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동네 CGV에서 독특한 독립영화를 틀어주길래, 한번 호기심에 보게 됐네요. 새로운 분위기의 영화가 보고싶다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감에 관한 영화입니다. 도쿄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도시가 되어, 도시의 젊은 층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어둡고 우울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암울한 도쿄에서 살아가는 두 남녀의 얘기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신지는 한쪽 눈이 안보이는 청년으로, 공사판의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합니다. 미카는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걸스바에서 일하는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사회의 이면을 마주하면서 절망하지만, 둘을 만나고 서로에게 기대면서 희망을 얻습니다.

영화에서의 영상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쿄의 야경과 소음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그 아래에 내면 깊이 숨어있는 사람들의 ‘짙은 블루’ 색의 불안함과 우울함을 도시가 잡아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이 안보이는 신지가 바라보는 세상은 스크린 반쪽이 가려진 것으로 표현됩니다. 파란 하늘도 반쪽, 공사판도 반쪽, 모든 세상이 반쪽밖에 안보이는 답답함을 보여줍니다. 영상에서의 표현으로 도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일본의 사회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신지가 일하는 공사판은 2020 도쿄 올림픽 건설현장이고, 동료는 과로사하며, 옆집 노인은 고독사하고 맙니다. 미카도 마찬가지라, 간호사로써 매일 죽음을 접하고, 걸스바에서 일본의 밤문화에 톱니바퀴가 되어 일하면서, 방사능이나 지진과 같은 재해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모두 일본의 젊은 층이라면 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들도 많습니다. 영화 내내 절망적인 상황을 여러개 이어서 스토리를 이어나가려 하다보니, 나중에는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절망적인 삶을 산다는걸 1시간동안 소개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영화답게, 마지막에는 ‘그래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나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안끝나면 검열당하기라도 하는걸까요. 마치 ‘도쿄 생활이 너무 힘들어…’가 계속 이어져오다가, 신지와 미카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반전되어 ‘그래도 살아야지!’로 전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일본 사회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네요. 동네 CGV에서 독립영화들을 많이 틀어주는 것 같던데, 다음에도 일본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으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문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8)


이 영화는 빨간안경 이동진이 영화리뷰를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덩케르크>라는 영화에 관심을 가져서 영화리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근데, 덩케르크 탈출 작전 이전에 처칠을 개인상을 다룬 작품이 있다고 소개하길래 접하게 되었네요.

나치의 폴란드 침공부터 덩케르트 탈출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처칠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영국에 소속당 지지도 못받는 총리, 파탄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사, 그리고 가족에게 무관심한 가장으로서 처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위인으로 추앙받는 처칠도 한 사람이라는걸 보여줍니다. 특히 칼레에 주둔한 군대에 희생을 강요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절멸할 것을 알면서도 군사들을 적진으로 몰아넣는 장면,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에 마지막을 맞이하는 군인들, 그것에 약간은 고통스러워하는 처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역사의 굴레에서 사람은 나약하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곳곳에 이질적인 영화적 설정도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전쟁을 외치는 시민들이라던지, 우상화가 너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적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우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영화리뷰는 여기에 잘 소개되어있습니다.

사실, 나는 영국이  나치즘 못지 않은 제국주의 행각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분명 잘못된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면죄부도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쥐어진 것입니다. 국가가 절멸위기에 있을때는 국익을 위해서 움직일 사람이 필요합니다.  당시 내외부에서 몰락이 다가오던 영국에게 처칠은 차악에 선택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우상화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한 시대와 사람의 역사에 대해서는 꽤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카오스 멍키(안토니오 가르티네즈)

카오스 �키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돌아왔습니다. 블로그에 글 쓰는게 그리웠습니다. 시험은 개판을 쳤지만, 그래도 내 블로그는 온전히 남아있습니다. 마치 블로그가 내 마지막 피난처인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튼, 카오스 멍키는 세련된 미친 원숭이가 표지에 있는 경영서적입니다. 저자는 안토니오 마르티네스(Antonio Matinez)라는 쿠바 이민자의 자녀인데, 이 사람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해, 골드만 삭스(투자은행), AdChemy, AdGrok, 페이스북, 트위터를 고루 거쳐온 엘리트입니다. 하지만 커리어를 망쳐버리기로 작정한 것인지, 책에서는 본인의 경험과 증오를 가득 담아 뉴욕과 실리콘벨리의 실태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저 실리콘벨리 IT기업들의 문화를 드러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본인의 사생활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직장동료, 상사, 여자, 투자자 그리고 자식과 경험했던 일들과 뒷이야기를 죄다 담아냈습니다. 자신이 뒤통수 친 투자자들과 기업에 관해서도 나오니, 얼마나 적나라한지 가늠이 되겠죠. 가히 경영서적을 빙자한 모두까기 인형인 것 같습니다.

저자의 수많은 폭로 중에 ‘무상태 기계’가 만연한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에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뜻인 ‘무상태 기계’는 실리콘 밸리의 인성이 터진 기업인들의 성공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의 직장으로 여겨져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IT기업들의 속사정도 새로웠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지, 저마다 스트레스는 어디가든 있는 듯 합니다.

최근에 창업을 꿈꾸던 나로썬 정말 신박한 책이었습니다. 실리콘 밸리라고는 스타트업의 산실이자 구글과 페이스북의 고향이라는 점 밖에 모르던 제게 그쪽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런 환경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에 인재들이 한데 모여 창의적인 기술들을 개발하는 기형적인 생태계가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문화] 신경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겨울방학 중순부터 몸이 급격하게 안좋아졌습니다. 말할 수 없는 가사(家事)가 생기고 난 직후였습니다. 내 자신이 무기력해졌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방학은 전혀 이루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주변환경 탓을 하고 싶지만, 나는 내가 노력을 안했다는걸 제일 잘 알고있습니다.

나름 공부를 하긴 했지만 남들에 비교하자니 한참 뒤떨어져보였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남이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결국 ‘남’이라는 보이지 않는 상대에 내 자신을 비교하며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내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다른 사람은 다른 길을 가는 것 뿐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판단의 준거로 잡을 필요가 없다는걸 <신경끄기의 기술>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제가 걷는 길을 보며 평가해댈 것입니다. 제 학력, 인성, 외모, 사회적 배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왈가왈부 할 것입니다. 그치만 제가 정말로 평가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만 하면 끝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니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이철기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지론인데,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제3자의 얘기를 꺼내면서 평가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움을 줄 생각이 아니라면, 그건 도를 넘은 오지랖이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마치 스토커처럼 남들에 사생활을 찾아보고 입에 올리며 평가합니다. 주변에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관심도 없는 사람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거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적어도 저한테 만큼은 신경 끄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겠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무언가를 해야지 남들에게 선망받을거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입시시즌에 대해 ‘잘되면 좋겠지만 잘 안풀려도 길은 많아’라는 생각으로 입시를 임하게 됐습니다. 하룻밤 사이이지만 정말 큰 생각의 차이입니다. 아직은 스트레스가 남아있지만, 만사가 싫은 정도는 아니에요. 집중력도 훨씬 좋아졌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서 무기력함을 내쫒고 건강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 있는자리 흩트리기(김동연)

혹시 부족함이 별로 없는 조건 속에 있다면 더 긴장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결핍의 조건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렇게 가려는 목표와 지금의 상태와의 차이가 ‘결핍’을 만들어 줄 것이다.

– <있는자리 흐트리기> P. 67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 상업계 고등학교를 통해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주경야독 하면서 행정고시를 패스하여 학력 차별을 이겨내고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리까지 올라간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이야기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께서 말씀하시는 ‘유쾌한 파란’을 우리 사회에 실천하면서 일으키고 있는,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동기부여를 할만한 요소가 없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난 저로썬 더욱 그랬죠. 그저 내 인생은 그런대로 술술 잘 풀려왔습니다. 무언가 악에 받쳐 일을 일으켜본적도 없었고요. 동기부여를 받을만한 결정적인 결핍이 딱히 없었습니다. 어딘가 모자랄때면 주변에서 알아서 보태서 채워줬습니다.

정말이지 불합리한 환경에서 근성과 노력으로 크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하고도 부끄러운 얘기기도 합니다. 동기부여를 받을 결핍이 없어서 결핍을 찾아다닌다니, 얼마나 배불러 터진 소리로 들릴까 싶습니다. 저 문구 하나가 내 머리를 강타한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나의 목표와 지금의 상태와의 차이가 결핍이다’라는 부분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목표를 향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도 않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결핍을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부터 해야될 것 같습니다.

[문화] 어느 날 400억원의 빚을 진 남자(유자와 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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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장인의 장미빛 생활에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부도 직전의 회사와 400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된 한 남자의 기록이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은 오랜만입니다. 그만큼 흥미로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실 아버지 서재에 꽂혀있어 우연히 읽게 된 책입니다. 아버지가 책을 읽는다는 것도 놀랍긴 합니다. 근데, 그것보다도 작가의 이야기와 아버지가 겹쳐 보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출세한 직장인에서 한순간에 사업을 물려받아 중소기업 대표로 자리잡은 것을 부분이 그렇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꿈이 처음부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겠죠. 그저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것이야말로 내 미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축복받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6년동안 400억원의 빚을 갚는동안 작가가 강조한 문구가 ‘Never, never, never give up’이었습니다. 너무 식상한 문구기도 합니다.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끊임없이 도전하면 안 될 일도 되는 법입니다. 근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고통을 뭘로 상쇄시켜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당장 내 본업인 학업에서 허덕이는 내 자신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내 나름대로 고민 좀 해봐야 겠네요.

[문화] 아이 인 더 스카이(2016, Eye in the Sky)

 


집 안에서는 자살 테러 준비를 끝마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알샤바브 테러리스트가 있다. 집 앞 도로변에서는 꼬마 아이가 빵을 팔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무차별 공격으로 최소 80명 이상의 사상자가 예상된다. 때마침, 리퍼(MQ-1, 미군 정찰 및 공격용 드론)가 하늘에서 테러리스트 폭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60% 확률로 빵파는 꼬마아이는 폭격으로 죽는다. 과연 폭격을 감행해야 하는가?

102분의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다. 정말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다. 누군가는 아무 거리낌 없이 폭격을 승인하겠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 중 미국인 2명과 영국인 1명이 포함되어 있다면요?
주인공인 영국군 대령 입장에서 보았을 때, 타국 국민을 함부로 사살하는건 외교적 분쟁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영화 상에서는 백악관 보좌관과 핑퐁외교를 몸소 실천하시던 국무장관이 ‘미국의 적은 미국 시민권자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줘 외교분쟁은 해소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친서방 국가가 아닌 제3국가 출신이었다면, 외교분쟁은 피해가기 힘들었겠죠.

예상 피해 추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기 이전에 예상 피해 추산이 우선시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민간인 사상자 수에 대한 예상 피해 추산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영화에서는 영국군 대령이 담당 중사에게 압력을 넣어 기록을 조작합니다만, 현실에서는 감찰에서 걸리기 딱 좋은 행동입니다.

만약 폭격 과정에서 꼬마가 같이 죽는다면?
‘서방국가의 드론이 우리 꼬마아이의 생명을 앗아갔다’라는 선전물이 지역에 퍼지게 되겠죠. 테러리스트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프로파간다 도구를 지원해주는 꼴이 됩니다. 그에 반해 ‘잠재적인 피해자’를 막는 것은 서방국 측 프로파간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사람들은 가시적이고 자극적인 것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죠. 차라리 프로파간다 승리를 위해선 테러리스트 공격의 피해가 극대화되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꼬마의 아버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미친놈’들이라며 비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서방국의 폭격 이후 죽어가던 딸에게 도움을 주었던건 이슬람 극단주의 알샤바브였습니다. 그들은 병원으로 꼬마를 이송됐지만, 결국 딸은 죽고맙니다. 꼬마의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최소한 서방국은 딸을 죽인 원수가 되겠죠. 그렇게 알샤바브에 가담하는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서방국 측은 물리적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프로파간다 전쟁에서는 참패한 것이죠. 무엇보다 중요했던 질문은 당위성이라는 것을 다시 환기시켜준 영화였습니다. 하늘 위에 떠다니는 드론과 상황실 내부의 결정을 두고 흐르는 긴장감으로 집중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